what truly matters.

What Matters

우리는 왜 글을 쓸까요?

2026년 7월 13일 · 3분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생각을 살아내는 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조금 어색합니다.

저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일기를 열심히 쓰던 사람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오랫동안 보고서와 계약서, 사업 제안서처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을 훨씬 많이 써왔습니다. 논리가 중요했고, 근거가 중요했고, 결론이 중요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붙잡고 있는 글을요.

좋은 글보다, 솔직한 글

예전에는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글이 충분히 좋은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까?’ ‘공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글 하나를 붙잡고 며칠씩 고치는 일도 많았어요. 문장을 바꾸고, 순서를 바꾸고, 다시 지우고. 그런데 그렇게 붙잡고 있을수록 오히려 글에서 제 목소리가 사라지는 경험도 자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완성된 생각을 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오늘의 생각은 내일 바뀔 수도 있고, 몇 년 뒤에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도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점의 내가 진심으로 믿었던 것을 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마음으로 씁니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입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쓰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다 이해한 것 같았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 하면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깨닫습니다.

‘아, 나는 아직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저에게 글쓰기는 표현의 과정이라기보다 사고의 과정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은 계속 수정되고, 질문은 더 깊어지고, 처음의 결론은 종종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글은 결국 나를 위한 기록입니다

뉴스레터를 쓰고, 스레드를 쓰고, 유튜브 스크립트를 만들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세요?”

사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계속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사는 걸까. 왜 성공해도 허무할까. 왜 어떤 사람은 행복해 보일까. 왜 부모가 되고 나서 가치관이 달라질까. 왜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뒤늦게 이해하게 될까.

그 질문들이 머릿속을 며칠씩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문장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창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충분히 익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웁니다

재미있는 건 독자를 위해 쓴 글인데도 정작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글을 쓰는 본인이라는 점입니다.

몇 년 전 제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족한 부분도 많고, 지금이라면 다르게 표현할 문장도 참 많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만큼밖에 몰랐고, 그만큼만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그 변화가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은 성장의 흔적을 남깁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기록이기도 하고요.

많이 읽는 것보다 많이 살아보는 것

좋은 글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어요.

많이 살아봐야 합니다.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고, 누군가를 미워도 해보고, 용서도 해보고, 부모도 되어보고, 아프기도 해보고, 돈도 벌어보고, 잃어도 보고.

그 경험들이 쌓여야 문장에 무게가 생깁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깊이는 살아낸 시간에서 나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예전보다 책을 덜 읽는 대신 사람을 더 만나고, 더 관찰하고,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합니다.

좋은 글은 결국 좋은 문장이 아니라, 오래 고민한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글은 사람을 향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늘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수천 명의 독자가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라고 한 번쯤 생각해 준다면, 또는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잠깐 멈춰 생각해 준다면 그 글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거창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에 작은 질문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글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씁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계속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고, 답을 알고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쓸 것 같습니다.

결국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이해하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보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글이, 조금은 느리더라도 오래 남는 글이라고 믿습니다.

K.